디지털 휴먼증강의 세계
온 가족 고통 고령화의 적 '치매'…뇌 임플란트 심어 예방하는 시대 온다
AI 만난 인간의 진화 어디까지… 디지털 휴먼증강의 세계 2030년 인류는 어디까지 '업그레이드'될까. 이달 초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28개국에서 1위를 차지한 한국 영화 '승리호'에선 152세 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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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만난 인간의 진화 어디까지…
디지털 휴먼증강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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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인류는 어디까지 '업그레이드'될까. 이달 초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28개국에서 1위를 차지한 한국 영화 '승리호'에선 152세 나이지만 외모는 40·50대로 보이는 최고령 인간 '제임스 설리반'이 등장한다. 극 중 우주개발기업 UTS 회장인 그는 환경오염으로 폐허가 된 지구 대신 위성 궤도에 우주 피난처를 만들고, 화성을 새로운 지구로 재탄생시켜 '상위 5%' 인류만 이주시킬 계획을 꾸민다. 극 중 정확히 명시되진 않지만 그의 회춘 비결은 몇몇 장기를 기계로 대체하는 식으로 정보통신기술(ICT)과 바이오기술(BT)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암시된다.
지구촌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고령화와 질병, 예기치 못한 사고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의료비를 비롯한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고 생산성은 떨어진다. 세계는 점점 더 가난해질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문화 확산에 속도가 붙었고, 반대급부로 정서·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다.
전 세계 학자와 기업은 첨단 기술에서 탈출구를 찾겠다고 나섰다. 이른바 '디지털 휴먼증강'이다. IT와 BT,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기술로 인간의 신체와 두뇌, 감정을 '업그레이드'하는 프로젝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2030년께 인류의 몸과 뇌, 감정 컨트롤이 어떻게 변할지를 공동 연구해 '디지털 휴먼증강 유망 기술·서비스 18개'를 선정했다. 몇 달간 국내외 문헌 조사와 과학기술·인문사회과학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쳤고, 사회적 수요와 기술적 실현 가능성(2030년 상용화 기준)을 함께 고려했다.
보고서에는 흥미로운 기술이 대거 등장한다. 엑소스켈레톤 기반 개인 맞춤형 재활 시스템과 착용자 의도대로 근력을 키워주는 슈트가 대표적이다. 팔이나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슈트를 착용하면 AI가 개인 의료·신체 정보를 분석해 맞춤형 재활치료를 제공하고, 운동 강도까지 자동으로 조절해준다. 전신마비 환자나 중증장애 노인의 경우 마음을 읽는(마인드 리딩) 슈트가 뇌 신호를 감지하고 움직임 패턴을 학습해 '생각대로 동작을 제어'할 수도 있다.
특정 신체 기능을 상실한 시청각 장애인이나 고령자를 위한 기술도 나온다. 외부 정보를 센서로 수집해 시각장애인에게는 청각 신호로 바꿔주고, 청각장애인에게는 소리 정보를 촉각으로 바꿔 전달해준다. 지능형 시청각 기술은 AI가 사용자 시청각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 상태에 맞게 자동으로 보정해준다. 기능이 극대화된 안경이나 보청기를 착용하는 셈이다.
나의 몸이나 피부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엑소스킨'을 부착해 손상된 신체를 보호하고, 뇌·신경과 연결해 감각 능력을 회복시킬 수도 있다. AI가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 개인별 맞춤 면역 진단을 해주면 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 유행 때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인공장기를 이식받은 환자의 24시간을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 발견 시 병원이나 가족들에게 바로 연락하도록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두뇌 증강 관련 기술은 주목할 만하다.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하듯 뇌 특정 부분에 AI 칩을 이식하면 치매 예방과 치료는 물론 원하지 않는 기억을 없애는 것도 가능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뉴럴링크라는 회사를 통해 연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기술이다. 폭증하는 데이터를 AI 알고리즘으로 조합해 나에게 유용한 정보만 빠르고 정확하게 선별해서 받아볼 수도 있다. 소방관과 군인, 생산직 근로자들은 '증강인지 커넥티드 헤드셋과 헬멧'을 착용하면 멀리 있거나 보이지 않는 현장 정보까지 받으면서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어 유용하다. 뇌 연구가 진척되면 창의적 사고와 관련 있는 신경을 자극해 생산성을 높이는 '헬멧'도 등장할 전망이다.
유전자, 의료, 생활습관 정보를 입력해 디지털 공간에 '나보다 더 나 같은 쌍둥이(디지털 휴먼 트윈)', 즉 가상의 아바타를 만들 수도 있다. 육안으로는 보기 힘든 장기나 혈관 모습까지 볼 수 있어 수술을 앞두고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거나 신약 개발과 정밀 맞춤의료 연구에도 활용할 수 있는 유망한 기술이다. ETRI와 KISTEP는 이 같은 모든 서비스의 공통 기반이 되는 '지능형 인터페이스 기술'도 꼭 필요한 기술로 꼽았다. 지능형 인터페이스란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 증강을 위한 기반 기술을 말한다.
휴먼증강은 인류 공통의 목표다. 정부의 기술수준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휴먼증강 관련 최고 기술 보유국은 미국이다.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기술 수준은 75~80% 정도다.
박종현 ETRI 기술정책연구본부 경제사회연구실 기술총괄
이번 연구를 주도한 박종현 ETRI 기술정책연구본부 경제사회연구실 기술총괄(책임연구원)은 "보고서가 유망 기술로 꼽은 18개 중 엑소스켈레톤 기반 개인 맞춤형 재활 시스템, 지능형 시청각 증강 기술, 신종 감염병 대응을 위한 AI 기반 개인 면역·진단 시스템, 인공장기 지능형 관리 시스템, 정신질환을 위한 디지털 감성케어,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 증강을 위한 지능형 인터페이스 기술 등이 먼저 상용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과 서비스 범위가 매우 다양해 모든 분야를 동시에 육성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국을 앞서나갈 수 있는 분야를 적극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휴먼증강의 핵심 기술인 AI와 유전체 분석을 잘 활용하면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총괄은 "인간의 몸을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플랫폼처럼 인식하고 우리 몸의 일부를 대체 편집한다는 개념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며 "하지만 휴먼 대체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는 휴먼 증강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